예수원칼럼

환대: 믿음의 증거이며 실천윤리


초대교회는 ‘손대접’을 신자의 도리이자 구원의 증표로까지 여기는 믿음의 연장선에서 표현했습니다. 손대접이란 평소 친밀한 관계를 넘어 공동체 안의 소외된 자나, 한번 만나고 말 나그네를 포함한 섬김을 말합니다. 단지 밥 대접만이 아닌 상대방을 섬기는 친절한 모든 언.행을 포함합니다. 


기독교윤리학자 크리스틴 폴은 손대접을 두고 모든 실천의 통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손대접은 기독교 역사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특징 짓는 선행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손대접이 좋았는가? 신자들에게 손대접은 선택이 아니라 기독교 윤리에 속한 것으로 알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즉, 손 대접을 하는 것은 신자다운 것이고, 당연한 것인데, 손대접을 하지 못함은 거짓말하는 것처럼 나쁜 것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손대접의 기본 자세는 마 7:12절에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만큼 너도 남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입니다. 인색한 자의 대접은 초대 받은 자 입장에서는 괴롭습니다. 형편을 따라 하되, 라면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러운 마음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될 때, 환대의 기쁨을 누립니다.


크리스틴 폴은 말합니다. “손대접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오며 손대접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대에 반응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누군가에게 대접 받고나서 “다음 번엔 제가 사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약속을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십자가의 그 놀라운 은총을 받은 감격의 반응을 이웃을 섬김는 손대접으로 주님께 간접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손대접은 감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으면 원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섬겨도 상대방은 받기만 하여 섬김을 지치게 만들면 시험에 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폴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풍성한 대접을 기억해 봄으로써 극복해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신자의 손대접의 기본은 상호성, 즉 서로 섬김입니다. 받기만 하는 입장에서 함께 베푸는 자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먼저 베풀지는 못해도 함께 베푸는 자로 자라나야 합니다. 각자의 형편상, 매번 반응할 수는 없고, 상대방의 손대접의 수준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형편껏 .마.음. 담.아. 섬기는 베풂이 가장 중요합니다. 2. 서로 베풀어야 겠지만 그럼에도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먼저 베풂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3. 갚을 길 없는 자들에게까지 원망없이 감사함으로 베푸는 자들이 되도록 섬김의 범위를 확장해 가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목자 선정 기준이 간단합니다. 첫째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둘째 손대접 잘하는 분인가? 이 2가지를 가지고 목자를 고릅니다. 손대접 하나면 다른 모든 것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손대접을 신자의 도리이며 반드시 실천해야 할 도덕으로 이해하고 헌신했던 초대교회를 본받아 손대접 풍성한 예수원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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