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묻고 계신지요?
- 작성자 : 예수원
- 조회 : 214
- 23-09-16 18:29
가을철 성경 통독을 하면서 그전에는 큰 감동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역대상 11장 13-14절에서 사울이 죽은 이유에 대하면서 언급하는데,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사울이 죽은 이유가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것이 죽을 정도의 큰 죄인가? 물론 본문에서는 사울이 신접한 자(무당)에게 가르치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점집에 무당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예수원 교회 성도들은 사울처럼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당을 찾아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묻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아니한 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라며 북조선에 남겠다고 하신 79세 할아버지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분은 배고프고 병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신발은 다 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비굴하지 않으며 정직하였고 거룩함과 경외함이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한 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왜 나오려고 하세요?”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할아버지가 눈길을 피하려 땅 바닥에 시선을 두고 우물우물 쏟아 낸 말입니다.
“언제 나오실 수 있으세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노인은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래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지요” 그는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신 후 한 10분이나 걸렸을까? 노인이 돌아오셨습니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그 거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주먹은 꽈악 쥔 채로 몸을 곧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소이다. 저 미국에서 온 목사가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라고…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 줄로 아느냐?'라고 하시더군요.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아버지 집에 가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서울로 가시자”고 한 번 더 권하는 제게 “나도 아오. 자유가 무엇인지를…자유라는 게 좋은 게지… 마음 놓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헌금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노인 외에 다른 이들이 재촉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려다가 무릎을 꿇고 노인이 신고 온 신발에 입술을 대고 우는 동안 나의 목에 눈물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드리고 “안녕히 계시라요.” 인사를 하자, 그렇게 점잖았던 노인의 음성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요!!”
하루 하루가 고통 같은 북한의 현신을 벗어 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 였고, 1초의 고민도 안하고 함께 가겠다고 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묻고 결정하기를 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었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실까봐, 우리는 하나님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의 선택의 순간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순종의 훈련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것이 죽을 정도의 큰 죄인가? 물론 본문에서는 사울이 신접한 자(무당)에게 가르치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점집에 무당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예수원 교회 성도들은 사울처럼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당을 찾아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묻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아니한 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라며 북조선에 남겠다고 하신 79세 할아버지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분은 배고프고 병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신발은 다 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비굴하지 않으며 정직하였고 거룩함과 경외함이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한 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왜 나오려고 하세요?”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할아버지가 눈길을 피하려 땅 바닥에 시선을 두고 우물우물 쏟아 낸 말입니다.
“언제 나오실 수 있으세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노인은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래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지요” 그는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신 후 한 10분이나 걸렸을까? 노인이 돌아오셨습니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그 거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주먹은 꽈악 쥔 채로 몸을 곧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소이다. 저 미국에서 온 목사가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라고…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 줄로 아느냐?'라고 하시더군요.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아버지 집에 가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서울로 가시자”고 한 번 더 권하는 제게 “나도 아오. 자유가 무엇인지를…자유라는 게 좋은 게지… 마음 놓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헌금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노인 외에 다른 이들이 재촉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려다가 무릎을 꿇고 노인이 신고 온 신발에 입술을 대고 우는 동안 나의 목에 눈물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드리고 “안녕히 계시라요.” 인사를 하자, 그렇게 점잖았던 노인의 음성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요!!”
하루 하루가 고통 같은 북한의 현신을 벗어 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 였고, 1초의 고민도 안하고 함께 가겠다고 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묻고 결정하기를 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었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실까봐, 우리는 하나님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의 선택의 순간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순종의 훈련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