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의 보배는 섬김의 자리에서 나옵니다
- 작성자 : 웹관리…
- 조회 : 151
- 23-04-15 22:54
헌신의 다른 말은 섬김입니다. 섬김은 공동체나 상대방의 필요를 알고 그 유익을 위해서 조건없이 나를 내어 드리는 희.생.을 말합니다. 섬김은 식사 대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접은 섬김의 시작이고 기초입니다.
섬김은 남이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안귀실못’의 유혹과 감정을 이겨내고 헌신하는 모든 이타적 행위를 말합니다. 섬김은 선배나 직분자만이 베풀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섬김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또한 그렇게 풍성히 섬겨야 하는’ 기독교 윤리입니다. 즉, 신자의 의무와 책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윤리 명령에 근거합니다:“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 34).
사랑이라고 하는 명사가 동사로 바뀌면 ‘섬김’이 됩니다. 따라서 섬김의 실천이 없다면 그 사랑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재삼 반복하지만, 이 때의 섬김은 식사 대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내어 드리는 모든 종류의 헌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3:35).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식사 섬김’이나 ‘물질 도움’(경조사 등)은 다음에 내게 돌아올 섬김의 차례를 기대하고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섬김이 조건이 되면 이미 부패한 겁니다! 이런 식의 섬김은 반드시 어리석은 결말을 낳게 됩니다. 섬김은 감사와 사랑의 교제 속에서 베풀어지는 환대,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섬김은 결코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자기 희생적 섬김으로 탄생된 천국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모범과 가르치심에 근거한 섬김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그 섬김은 직분의 책임이 무거울수록 모범이 되어야 하고, 믿음과 신앙의 선배일 수록 존경할만한 모범이 많아질 때에 그 교회는 건강한 증거를 갖습니다.
“나 한 사람 없어도 괜찮겠지” “나 한 사람 안해도 괜찮겠지”라고 무책임하지 않도록 우리 제직분들은 겸손과 순종으로 더욱 무장하십시다. 받는 자리에 서려고만 하시거나, 무관심, 무책임한 자리에서 역할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십시다. 이것이 예수님이 공동체에서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제자도’입니다.
예수원의 보배는 섬김의 모범이 되시는 분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내 일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소리없이...,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서 풍성하고 지속적으로 헌신하시는 분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내게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권리 사용을 거부하고 기꺼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덕스러운 분들입니다: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이것이 섬김의 정수입니다. 더욱 힘써 주님의 제자도를 이루어 가십시다.
섬김은 남이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안귀실못’의 유혹과 감정을 이겨내고 헌신하는 모든 이타적 행위를 말합니다. 섬김은 선배나 직분자만이 베풀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섬김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또한 그렇게 풍성히 섬겨야 하는’ 기독교 윤리입니다. 즉, 신자의 의무와 책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윤리 명령에 근거합니다:“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 34).
사랑이라고 하는 명사가 동사로 바뀌면 ‘섬김’이 됩니다. 따라서 섬김의 실천이 없다면 그 사랑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재삼 반복하지만, 이 때의 섬김은 식사 대접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내어 드리는 모든 종류의 헌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3:35).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식사 섬김’이나 ‘물질 도움’(경조사 등)은 다음에 내게 돌아올 섬김의 차례를 기대하고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섬김이 조건이 되면 이미 부패한 겁니다! 이런 식의 섬김은 반드시 어리석은 결말을 낳게 됩니다. 섬김은 감사와 사랑의 교제 속에서 베풀어지는 환대,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섬김은 결코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자기 희생적 섬김으로 탄생된 천국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모범과 가르치심에 근거한 섬김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그 섬김은 직분의 책임이 무거울수록 모범이 되어야 하고, 믿음과 신앙의 선배일 수록 존경할만한 모범이 많아질 때에 그 교회는 건강한 증거를 갖습니다.
“나 한 사람 없어도 괜찮겠지” “나 한 사람 안해도 괜찮겠지”라고 무책임하지 않도록 우리 제직분들은 겸손과 순종으로 더욱 무장하십시다. 받는 자리에 서려고만 하시거나, 무관심, 무책임한 자리에서 역할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십시다. 이것이 예수님이 공동체에서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제자도’입니다.
예수원의 보배는 섬김의 모범이 되시는 분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내 일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소리없이...,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서 풍성하고 지속적으로 헌신하시는 분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내게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권리 사용을 거부하고 기꺼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덕스러운 분들입니다: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이것이 섬김의 정수입니다. 더욱 힘써 주님의 제자도를 이루어 가십시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