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칼럼

통성 기도의 유익


청년시절 예배 시간에 합심 기도 시간이 있었는데 통성으로 기도를 하다가 경상도 출신 고신 토박이 형제에게 항의를 받았다. 왜 소리를 내어 기도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합심 기도회에 시간에 통성 기도는 당연한게 아닌가 하고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조용히 소리없이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들으시니 통성 기도 보다 소리없는 기도를 선호할 수 있지만, 이 칼럼을 통해 그런 다양한 기도도 통성기도와 함께 겸함이 좋고, 통성 기도엔 여러 면에 유익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첫째, 통성 기도는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견고히 붙잡는 성도의 확실한 신앙고백이다. 통성 기도에는 각본도 없고, 준비도 없이 토로하는 기도여서 (시 142) 들을 때 당황스럽고, 심지어 미개하게 보이고, 무식하게 보이기 때문에 지적인 사람들은 통성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 실제로 통성기도가 우리의 지적인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지성을 영이 지배하게 된다. 통성 기도 때 주어지는 성령의 감동과 느낌은 우리의 영을 회복시키고, 심령의 소리를 내게 한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기도 보다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쏟아 붓게 하고, 우리를 성령충만하게 하여 하나님을 전적의뢰하는 기도이다. 더불어, 통성 기도후 잠잠한 가운데 성령께서는 우리의 지성에 아이디어를 주실때도 있다. 하나님이 내 문제의 해결자라는 확신을 붙는 것이 고상하게 보이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하다. 예레미야 33장 1-2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리이라.” 예레미야 29장 12-13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둘째, 통성 기도는 성령께서 하게 하시는 내 육성의 기도를 내 귀로 듣는 시간이다. 소리 내어 기도하면 그 기도 소리가 내 육체 안의 영혼에 가장 깊은 곳의 영적 야성을 일깨울 수 있다. 통성 기도라 하여서, 항상 울부짖어야 (CRYING OUT)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소리를 내야 한다. 때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하며 그것을 낭독하는 것도 좋다. 더 나아가, 말씀을 암송하여 인용하며 그 약속에 근거 하여 강력하게 부르짖음으로 내 귀에 기도가 들리게 하는 것도 참 좋다. 기도는 내 소원을 아뢰는 것이 포함되지만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바른 통성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내가 순종하는 기도의 표현이 통성기도 가운데 나타난다. 방언 기도만이 영의 기도가 아니라 계속 통성으로 하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아가 깨어지는 성숙한 기도가 나올 수 있고, 나의 잡생각을 사로 잡고, 어둠의 영들을 차단하고, 하늘이 뚫리는 시간을 만들어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하는 능력의 통성 기도를 내 귀가 듣게 함이 좋다.
셋째, 통성으로 하는 기도에 하나님의 권세와 강력한 능력이 동반된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 초대교회는 더불어 한마음으로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 (행 1:14-15) 토마스 왓슨 목사는 “천사가 베드로를 끌어 냈지만 천사를 끌어낸 것은 기도이다.”라고 했다. (행 12:5-10). 통성 기도엔 분명 능력이 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개인이 기도하면 소총을 쏘는 것이요, 두 세사람이 기도하면 대포를 쏘는 것이요,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핵폭탄을 쏘는 것이다. 기억하자. 초대교회의 기도는 강렬하고 뜨거웠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권세와 강력한 능력을 동반하길 갈망할수 있다.

예수원 교회의 대예배의 연합된 합심 통성 기도와 아침 통성 기도회는 성도의 영적 야성을 살아있게 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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