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칼럼

접속이 아니라 접촉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에 얼마 동안 TV와 인터넷에 접속하고 계신지요? TV를 통해 각종 드라마와 오락프로램을 접속하고, 또한 인터넷을 통해 유튜브와 각종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요? 코로나 팬데믹 전부터 TV와 인터넷 등 미디어 중독이 사회적 문제였는데, 코로나 팬디믹을 거치면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해 지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접촉 비대면 사회가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TV와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생명의 접촉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미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데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한 대학팀이 실시한 연구를 보면 미국에 사는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코로나 시대 고령자들이 영상통화 등 비대면 접촉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어왔지만, 오히려 외로움이 급증했고 전반적인 정신적 웰빙이 감소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에 친구나 가족과 더 정기적으로 대면 접촉을 한 고령자들의 정신적 웰빙의 수준이 더 높았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막 1:40-45). 나병은 우리 알듯이 살이 썩어 가는데도 그 통증을 못 느끼는 병입니다. 그래서 험악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나병 환자들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자'로 취급되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막이 있는 진영에서 격리되어 진영 밖에서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레 13:46).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인 “격리 (Quarantine)”의 원조는 나병환자 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떠나 혼자 지내야 했던 나병 환자는 거의 죽은 사람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은 나병환자를 부정한 자로 취급해서 그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은 전염되어 부정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나병환자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나병의 고통보다는, 생명과의 접촉 없이 홀로 지내는 고독과 절망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찾아가 자기를 깨끗게 해달라고 합니다(막 1:40). 예수님은 이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며,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41). 나병을 치유하고도 남을 능력의 소유자였던 예수님께서는 굳이 부정한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으시고 말로만으로도 치유할 수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에 의해 부정함이 전염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의 손은 그동안 그토록 간절히 경험하기를 원하던 생명의 접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생명의 접촉을 통해 나병 환자의 모든 부정함을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모든 의로움과 생명을 전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접촉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팬데믹으로 우리는 이 생명의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이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터넷 세상에 접속하여 세상의 온갖 부정한 것들에 오염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의 '접속'이 아니라 주님과의 '접촉'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생명 되신 주님과 접촉하여 사귐을 같고, 주님의 생명이 날마다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요일 1:1-4). 어디에 가든 이제 '와이파이'를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처럼(창 12:7-8; 13:18), 우리도 가는 곳 마다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과의 접촉을 통해 주님의 생명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황치석목사-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