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칼럼

언제나 주님이 기뻐하실 최고의 예배를 힘씁시다


목회자가 되기 전 평신도 시절, 예배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이 많았습니다. 예배는 제사인가? 예배는 개인의 신앙 고백이 아니고 교회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인가? 예배가 제사라면 예배자의 영적 상태보다는 예배 형식과 진행이 중요합니다. 역시 개인의 신앙고백보다는 교회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지각, 결석, 예배 중 일찍 일어남, 예배 자세 흐트러짐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여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위의 두가지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천주교회의 미사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중세 시대 때, 천주교회의 이러한 예배관이 비성경적임을 주장하며 개혁을 부르짖었던 후예들입니다. 놀라운 일은 개혁파 교회들에서도 예배에 비슷한 흐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젠 그 흐름이 전통과 관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형식, 진행과 예배관은 분명 천주교와 다르지만 예배자들의 사고 방식이 그러합니다. 또한 예배 인도자는 예배를 ‘고백’보다는 ‘의전’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예배를 인도하면서도 설교가 예배의 전부가 되는 것처럼 찬양과 기도, 그리고 봉헌과 성도의 교제는 지나치게 소홀히 합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예배의 개혁을 단행하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또한 예배자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소비자 중심의 '맞춤 예배'에 민감하다보니, 예배의 목적과 방향이 가인의 제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것은 진실된 믿음의 고백이 공동체가 하나되어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양적 번성과 예배자들의 필요에 초점 맞춘 변질된 예배입니다. 제사장 아론이 인도했던 ‘광야의 금송아지’ 숭배와 많이 닮았습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함을 빙자한 소비자 중심의 예배입니다. 우상 숭배에 가깝습니다.

저는 예수원을 개척하면서 예배의 개혁을 초점 맞추었습니다: ‘형식과 전통 중요하지만 예배의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 공동체로 드리는 예배가 틀림없지만, 예배자 개개인의 영적 고백이 중심이되어 공동체가 하나로 드리는 예배가 합당하다. 즉 ‘의전’보다는 ‘고백’이다.’ 는 확신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예배 모델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중심의 성령의 주도하심이 있는 ‘살아 있는 예배자’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이것이 예수원이 예배 때마다 목표하는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실 최고의 예배자가 되라”입니다. 감정에 초점 맞추기 보다는 영성에 초점 맞추십시오. 나의 영적 만족에 초점 맞추시기 보다는 삼위 하나님이 만족하실 예배자가 되는 일에 초점 맞추십시오. 생명력 없고 엄숙하기만 한 제사 형식의 예배 참석을 벗어나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을 균형있게 붙잡으십시오. 여기에 은혜와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 다운 자유와 기쁨과 소망과 새롭게 하심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경험되는 생명력있는 축제의 예배를 언제나 힘쓰십시오.

요즘 여러 사정으로 결석이 많지만 상관없이 예배에 집중합시다. 영상 예배자일 경우 더 많은 노력을 하십시오. 더구나 다음주부터 이스라엘 참가로 평소보다 50여명 이상이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최고의 예배를 언제, 어디서든 힘쓰시는 예수원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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