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5월 기도편지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184
- 24-05-25 13:42
샬롬!
어느덧 해가 바뀌어 민선교사를 떠나보낸지 1주년이 되었다.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는 캄보디아를 사랑한, 정말로 행복한 선교사였다. <선교는 낭만이요, 최고의 투자>라고 늘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왕관, 코로나
온 세상이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잠시 멈춤" 상태에 있던 그 시기.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될 위기에 놓이고, 교회들도 예배에 제약을 받아 모이기에도 눈치보이던 그때에 그는 가가호호 축호전도를 하자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양육으로, 기도모임으로, 설교준비로 늘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는 모든예배가 정지되고 덩그러니 자신앞에 놓여진 시간자체가 어쩌면 형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예배도 닫히고 수요일과 토요일의 양육도 멈추고 기도모임도 없앤 형벌의 시간. 청장년들은 메신저를 통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고, 조막만한 노키아폰으로는 인터넷 예배를 드릴수 없던 몇몇 노인들만 교회에 나와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애찬마저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던 그 상실을 감내하기란 내게도 버거운 일이긴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대책없는 그의 제안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느집에서 걸렸는지도 모를 코로나로 우리 부부는 지독한 열에 시달렸고 식사준비도 힘들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우리는 에어 앰뷸런스로 한국에 실려왔다. 그때부터다. 그는 병마와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오랜동안 에크모를 낀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고 온누리교회와 많은 기도방에서 그를 위한 탄식과 애원의 기도가 이어졌다. 그는 극적으로 회복되는 듯 했지만 기쁨도 잠시, 폐이식 거부반응과 면역억제제 사용으로 인해 다시 산소호흡기를 끼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입퇴원을 거듭했다. 그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던 그때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전도했던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후회하지 않는다. 천하보다 귀한 한영혼을 얻기 위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해도 본인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고백했다.
병석에 있던 1년 8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자아가 강해 사용하지 않던 방언도 소리내어 기도하기 시작했고, 날마다 하나님께 가기위해 아직 고백하지 못한 잘못이 없는지도 점검하며 찬양으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갔다. 자녀들에게도 그동안 아빠로 인해 상처받은 것이 있는지 용서를 구했고, 어머니와 형제들과도 담소하며 함께 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쌓았고, 내게는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아내였다"는 찬사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 코로나는 그를 앗아가 으스대며 흉칙한 자기 왕관을 썼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더 커지기를 원하며 복음을 전했던 민선교사에게서 왕관의 보석같은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빼앗아 가지 못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스가랴 9:16)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것이 회복되는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남겨준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면류관, 왕관이 되실것을 우리모두는 다 알고 있다.
제자를 낳는 제자
2021년 10월에 한국에 실려와 병상에서 고통중에 있을때에도 캄보디아 교회식구들은 메신저로 늘 민선교사의 안부를 묻고 함께 기도하며 영으로 함께 있어주었다.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제약이 점차 약해지며 다시 예배에 다 참석하기 시작했을때 우리는 기뻐했고, 특별히 어린이 예배를 다시 열었다고 알려온 사진을 보며 우리 두사람은 얼마나 감격했었는지 모르겠다. 선교사가 자리에 없음에도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는 그 기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알수 없으리라.
22년 연초가 되자 뽓띠에게 연락이 왔다. 세례공부가 다 끝났는데 세례를 받기위해 그들이 목사님과 사모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가겠다 기약할수 없는 처지라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너희가 세례를 베풀라고 일러주었다. 2월 말경 보내준 그들만의 세례식사진은 우리를 통곡하게 했다. 우리부부에게 그 세례식은 가히 눈물의 세례식이었고, 그 눈물은 말할 필요도 없이 기쁨의 눈물이었다. 자립하기 힘들다는 현지교회에서 2년여의 시간들을 어떤 재정적 도움도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교회를 지키고 유지해준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제자들을 높이 평가할수 밖에 없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교회 재정을 위한 헌금이 부족하면 오히려 제자그룹들이 자발적 후원을 해가며 그 시간들을 보내고 운영해 온 것이다.
23년 10월, 남편없이 다시 돌아온 캄보디아. 그 많던 청년들이 취업으로 결혼으로 많이도 빠져나가고 어른들도 이사로, 하늘나라로 여럿 보이지 않았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중고등부 아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어느 NGO인지 마을 아이들중 하필 우리교회 아이를 길에서 만나 줄줄이 소개해서 이름모를 프놈펜 학사로 데려 가버렸다는 전언이었다. 초등생들로 만 꽉찬 어린이 예배. 중고생 예비교사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린이 예배 담당들도 결혼으로 떠나버린 지체들을 대신해 그동안 도우미 교사였던 자매들이 그자리를 맡고 있었다. 주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다시 시작이다. 해가 바뀌며 7학년 생들을 따로 모으자 6학년, 5학년생들 몇명도 토요일 양육모임에 오고 싶다고 한다. 기특한 녀석들..... 어린아이에게 영혼의 양식을 먹이고 있는 홍과 달린, 어린이 예배 담당들을 따로 만나 공과내에서 반드시 가르쳐야할 예수그리스도와 구원의 연결점을 가르치고, 선생으로써 더 깊이 성경을 이해할수 있도록 돕는 이 일들이 내게는 늘 도전이 되고 은혜의 시간들이 되고 있다. 마약으로 인해 센터를 몇번씩 드나든 삔은 전두엽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양육할때 한과를 몇번이나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수고로움을 감내할수 있음은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또다른 제자를 가르칠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기념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며, 또 기념할만한 것이 또 무에 있겠는가마는 내가 민선교사의 비망록을 새긴것은 그의 간절한 바램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캄보디아에 두고 온 교회뿐이었다. 엄뻘교회는 제자들끼리 잘 세워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늘 기꺼워하고 하나님께 감사감사를 연발했지만, 닫혀 있는 루엉교회를 그의 가슴에 깊이 간직한 까닭에 그는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고 싶어했다. "내가 천국에 가서도 그땅을 위해 기도할께, 나를 캄보디아로 데리고 가달라"던 그의 마지막 부탁이 있어 그와 함께 캄보디아로 왔다. 그때 그를 어두운 땅에 묻고도 울지 않았는데, 왜 이글을 쓰면서는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곳 두란노 식구들과 FA선생님들 그리고 시간이 되는 몇몇 성도들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간소하게 가졌다. 작년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던 그날에 캄보디아 교회에서도 장례예배가 3번이나 있었다고 했다. 주일예배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또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소식을 들은 주변 성도들끼리, 마지막으로 멀리 이사나 결혼으로 떠난 지체들까지 그의 떠나감을 기억하고 안타까워 해준 많은 사람들로 인해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와 17년 세월을 함께한 밍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내마음은 오히려 차분하고 담대했다. 그가 그 모든 병의 질고에서 놓여나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환하게 웃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캄보디아 한인 선교사회에서 이번에 [한국선교사 캄보디아 선교 30년사]를 발간했다 한다. 맨앞에 이 땅에서 선교하시다 돌아가신 선교사님들의 이름을 게재하였는데 민성기 선교사의 이름도 올라있다는 얘길 들었다. 선교지에서 주님께 돌아간 선교사가 어찌 우리 남편 한사람뿐이었으랴. 그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에 이땅에 생명이 움트고 저들이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백성으로 설수 있었지 않겠는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 말씀을 다 기념비에 넣고 싶은게 내 바램이었다. 너무 긴 문장이라서 7절 한절만을 넣을 수 밖에 없었지만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 중에 한사람인 나도, 그이처럼 여전히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주의 길로 달려가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온 힘을 쓰는, 그의 아내로 부끄럽지 않게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이땅에 선교사로 와 있다. 그리고 끝까지 영혼을 사랑할 것이다.!!!
기도제목
0. 이곳 수도 프놈펜에 TIM 4유닛이 함께 Acts29 프놈펜교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영혼을 추수할수 있는 구원의 방주가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초기 개척 비용이 필요합니다. 렌트비와 필요 물품구입비등등. 새로운 교회 개척에 동참을 원하시는 분들은 <교회개척>이라고 쓰시고 목적헌금을 보내실수 있습니다.
1. 엄뻘과 루엉 양쪽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이 부흥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어린이 예배를 담당하고 있는 홍과 달린에게 어린 영혼들이 달려 있으니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며 사랑으로 양육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2. 싸롬과 뽓띠가 교회의 리더로 있는데, 교회의 온전한 자립과 성장을 위해 두사람이 온누리 선교훈련을 받고 현지인 선교사로 PASS할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3. 올해 교회의 표어가 "한사람을 위한 복음"입니다. 올 한해 한사람이 한영혼을 전도해 제자삼기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온 성도가 자신의 한사람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며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을 주님께 올려 드릴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새식구 뿌싼과 밍 다니, 셍홍이 주안에서 잘 자라 교회의 기둥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5. 기존 식구들이 많이 빠져나가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일꾼들을 보내주셔서 현재의 일꾼들이 지치지 않고 사역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최윤숙 선교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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